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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의 만남/사회 및 자기계발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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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서스킨드 지음 김정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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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기에서 배워야 할 일반적인 교훈이 하나 있다. 경제학자들은 대개 인간이 어떤 업무를 수행할 때 이용하는 특정 능력에 따라 업무에 꼬리표를 붙인다. '인간이 수행할 때 신체 능력, 인지 능력, 대인관계 능력이 필요한 업무'라고 말하기보다 '신체 업무', '인지 업무', '대인관계 업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은 기계들이 잠식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앞에서 여러 번 봤듯이, 이제 기계는 인간이 어떤 업무를 하는 데 필요한 특정 능력을 모방하지 않고도 갈수록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용하는 능력에 따라 업무에 꼬리표를 다는 것은 기계가 똑같은 방식으로만 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게 한다. -p125

노동시장에서 '마찰'은 이직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더라도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경제를 커다란 기계로 비유하면 바퀴에 모래가 끼어 부드럽게 굴러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오늘날에도 벌써 이런 마찰이 일어나는 곳이 있다. 노동 연령에 속하는 미국 남성을 예로 들어 보자. 2차 세계대전 뒤로 미국 남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무너졌다. 이제는 여섯 명 중 한명이 실업상태로, 1940년에 견줘 실업률이 두 배나 늘었다.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은 이들이 마찰적 기술 실업에 빠졌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들 대다수가 제조업 분야에서 보수가 두둑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술이 진보한다는 것은 제조업이 이들을 모두 고용할 만큼 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1950년에는 제조업이 무국인 세 명 중 한명을 고용했지만, 오늘날에는 열 명 중 채 한 명도 고용하지 않는다. 미국 경제가 탈바꿈하고 성장하면서(미국 경제는 1950년 이후 네 배 팽창했다) 제조업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었지만, 제조업에서 밀려난 이 남성들은 그런 일을 맡을 수 없었다. 이 일자리들이 다양한 이유로 이 노동자들의 손에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p142 ~ p143

알다시피 여러 선진국의 노동시장은 최근 몇 녕 동안 점점 양극화됐다. 꼭대기 쪽의 고임금 고숙련 일자리가 예전보다 늘어났고 바닥 쪽의 저임금이나 저숙련 일자리도 넘쳐 나지만, 전통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보수가 두둑한 중산층 직업을 제공했던 중간의 일자리는 이제 시들어 가고 있다. 미국이 어느 정도 대표성을 띤다면 증거로 보건대, 이제 이런 공동화는 지속될 전망이다. 바로 여기에서 마찰적 기술 실업이 일어날 것으로 즉, 꼭대기로 뛰어오르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해야 할 첫째 이유가 나온다. -p143

노동자들이 이런 취업 자리를 꺼린다는 사실이 특히 중요한 까닭은 앞으로 올 기술 진보가 반드시 더 매력 있는 일자리를 만든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흔히들 이런 환상을 품는다. 기술이 진보하면 성에 차지 않는 지루하고 따분한 업무는 기계가 맡고 사람은 의미 있는 업무만을 맡을 터이므로, 일이 더 흥미로워지리라. 기계 덕분에 우리가 일에서 벗어나 "정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무엇인가를 하리라." (이 생각은 우리가 자동화를 말할 때 사용하는 바로 그 말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로봇이라는 말의 어원은 체코어 'robota'로, 힘들고 곧힌 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생각은 착각이다. 이미 볼 수 있듯이, 기술 진보가 인간에게 남겨 둔 일은 대부분 노동시장 밑바닥의 저임금 일자리에 몰려 있는 '틀에 박히지 않은' 업무로, 많은 사람이 자동화의 손이 미치지 못하리라고 상상한 활동,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미래는 이와 다르리라고 생각할 까닭도 없다. -p148

마찰적 기술 실업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를 보려면, 미국에서 택시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수백만 명을 떠올려 보라. 무인 자동차 시대에는 이들의 일자리가(보바마 정부의 말을 믿는다면 220만에서 310만 명의 일자리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아마 무인 자동차를 설계하고, 조율하고, 관리할 컴퓨터 전문가의 수요가 치솟을 것이다. 아니면 더 부유한 나라에서는 청소, 미용, 정원 관리같이 첨단 기술과 관련 없는 저숙련 서비스 업종을 찾는 수요가 무척 커질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은 운전사는 이 새로운 기회 가운데 어느 것도 차지할 적절한 위치에 있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트럭 운전사가 다시 프로그래머 교육을 받기는 그리 쉽지가 않다. 어쩌면 새로운 성격의 직종을 싫어할지도 모른다. 또 설사 얻고 싶은 일자리가 있더라도, 그 일자리와 동떨어진 곳에 살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숙련 기술 불일치, 정체성 불일치, 장소 불일치가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에게 한꺼번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p156

 

카스파로프

 

 


카스파로프는 자신의 체스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동업자 관계가 체스뿐 아니라 모든 경제 분야에서 승리할 공식이라고 선언했다. 많은 사람이 이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알파제로의 승리에서 보듯이 이는 틀린 생각이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기계가 인간 동업자가 기여하는 몫을 수행할 수 없을 때만 힘을 얻는다. 하지만 기계의 능력이 갈수록 향상하므로, 인간이 기여할 몫이 줄어들다가 마침내는 이런 동업자 관계가 끝나고 만다. 즉 '간과 기계'에서 '인간'이 쓸모없어진다. -p162

 

로이 아마라


그렇지만 시기를 에측할 만한 전반적인 의견 몇 가지는 살펴볼 만하다. 실리콘밸리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인 로이 아마라Roy Amara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루리는 기술의 단기 영향은 과대평가하고 장기 영향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생각하는 데 유용한 조언이다. 지금은 인간의 노동을 찾는 수용가 곧 와르르 무너지리라는 두려움이 지나치게 불풀려져 있다. 짧게 볼 때 우리가 마주한 난관은 마찰적 기술 실업을 피하는 것이다. 아직 한동안은 인간이 맡을 일이 충분할 터이므로, 가장 큰 위험은 십중팔구 일부 노동자가 그런 일을 맡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라의 생각에 비춰 길게 볼 때 우리가 심학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노동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구조적 기술 실업이 일으킬 위험이다. 하지만 그런 위협이 얼마나 멀리 있을까? 케인스가 장기 대책을 신랄하게 꼬집을 때 말한 대로 "길게 볼 때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렇다면 굳이 먼 앞날의 일까지 걱정할 이유가 있을까? 그런데 내가 기술과 관련해 말하는 장기란 수백 년이 아니라 수십 년이다. 그 점에서 나는 케이스보다 더 낙관적이다. 독자들과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장기적으로 어떤 상활이 벌어지는지를 보기 바라기 때문이다. 설사 우리는 그 상황을 보지 못하더라도 우리 아들은 틀림없이 보게 될 것이다. 적어도 아이들을 위해, 우리는 일이 줄어든 세상이 일으킬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p181

 


하지만 오늘날 불평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더 낙관적인 다른 이유로도 유용하다. 앞으로 기술적 실업에 대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똑같은 기술 변화에 노출되어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날로 커지는 불평등 아래 깔린 세가지 추세는 나라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는 무시해 버릴 불편한 사실이 아니라 흥미롭게 바라봐야 할 지점이다. 기술 변화에 국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정말로 중요하다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불평등 연구를 이끄는 저명한 학자들의 말대로, "최근 몇십 년 동안 거의 세계 모든 지역에서 소득 불평등이 커졌지만, 속도는 달랐다. 발전 수준이 비슷한 국가들 사이에서도 불평등 수준이 무척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불평등을 형성하는 데 국가 정책과 제도가 무척 중요하다는 점을 뚜렷이 드러낸다.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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