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이라고 주장하는 식당에 가보면 '원조'라고 주장하는 간판이 난무한다. 원조가 아닌 집이 없어서 웃음이 날 지경이다. 식당들이 저마다 원조라고 주장하는 것을 비판하기는 했으나 왜 그렇게 원조가 많은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당연히 원조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원조에 대한 집착은 유독 한국인에게만 강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인은 왜 그렇게 원조에 집착하는 것일까?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색다른 것이 있어. 유별나게 정통(正統)을 강조하는 식당이 많다는 거야. 정통 한식, 정통 일식, 정통 중국 요리... 정통 프랑스 요리, 정통 궁중요리, 정통 이탈리아 요리 등등 ... 그뿐만 아니라 서로 자기네가 원조임을 강조하고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하지. '정통'이란 게 뭐지? 생겨났을 때의 원영(原形:Original)을 그대로 유지해 다른 것과 뒤섞거나 바꾸지 않았다는 즉 원래의 순수성을 훼손하지 않았다는 얘기야. 다시 말해 자기네야말로 뿌리가 있음을 강조하는 거지.
정통성을 중히 여기는 한국인의 태도는 족보를 소중히 하는 데서도 잘 나타나. 외국에서도 족보 찾는 일이 드문 건 아니야. 그러나 유럽의 경우 귀족 집안에서나 혈통의 고귀함을 과시하려고 족보를 따지지. 일반 가정에서 족보를 만들거나 소유하는 예는 극히 드물어. (중략) 그러나 한국에서 족보는 한 가문이 소중히 여기는 가보에 속해서 집안 어른들이 화수회(花樹會)를 만들어 계속 족보를 다듬고 있어. 족보가 없는 가문은 '뿌리 없는 집안'으로 무시당하기 일쑤고 개 한 마리를 키워도 족보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지. '족보에 없다'는 말이 욕으로 통할 만큼 족보를 중시하는 태도. 이는 한국인이 얼마나 정통성과 뿌리를 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본보기야. (p.70~71)
정통성은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자 하는 태도다. 뿌리를 중시하고, 조금이라도 변형이 있는 것은 배척한다. 한국에서는 과거부터 정통성을 중시하여 왕위를 계승할 때에 장남에게 계승하지 못하면 정통성 문제로 내내 시끄러웠고, 양반의 자손이지만 어머니가 정실 부인이 아니면 서얼이라 하여 대접도 받지 못하고 관직에 나아가지도 못했다. 그런 문화는 현대에도 이어진다. 명문대 편입생, 입사 시험을 보지 않고 들어온 직장인 등등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람들은 정통이 아니라서 따돌림을 당한다. 무엇이든지 원형에서 벗어나면 안 되고 정통성을 고집하는 한국인의 의식이 꼭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원형을 보존하여 고유한 특성과 문화를 유지하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정통성이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수단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통성을 강조하며 무조건 타인을 배척하기 보다는 상황에 맞는 융통성 있는 태도와 나와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관용의 문화가 조성되었으면 한다.
'책과의 만남 > 사회 및 자기계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먼 나라 이웃 나라 4 영국 _ 영국 왕은 왜 정치에 관여하지 않게 된 걸까? (0) | 2025.02.10 |
---|---|
김미경의 마흔 수업 _ 마흔, 너무 늦지 않았다 (0) | 2025.01.25 |
돈의 심리학, 돈 벌려면 심리 파악부터 (1) | 2024.08.12 |
이원복 교수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1, 알코올 음료의 종류 (0) | 2024.08.06 |
커피 한 잔 가격으로 시작하는 미국 배당주 투자, 황금 종목 30종 (1) | 2024.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