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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의 만남/인문학

책후기 / 봉태규의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2023) _ 솔직함이 주는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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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태규의 글은 솔직하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적절하게 포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유명인이라면 그런 마음이 더 클 것이다. 그러나 봉태규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겪은 남다른 경험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너무 진지하지 않게 담백하게 그려낸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어린 시절의 자신과 부모님의 모습을 가감 없이 묘사하는 그의 글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힘들었던 과거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는 꽤 괜찮은 어른이다.

 

 

 

 

 

그가 내게 내어준 마음을, 내가 그에게 내어준 마음을 새삼스레 더듬어본다. 그리고 여전히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을 우리의 내일을 본다. 모든 감정과 다가오는 고난을 온전히 혼자 감당하기엔 조금 벅찬 날들에, 우리는 늘 그랬듯 서로에게 기꺼이 곁을 내어줄 것이다.

 

봉태규는 친한 친구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더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 친구의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얼만큼 마음을 내어주고 있을까? 주변 사람에게 친절해지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이미 지쳐 있어서 수박 겉핥기식의 친절함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로에게 기꺼이 곁을 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에게 내 마음의 한 자리를 내어주기 보다는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제대로 해내지도 못하는 일에 대한 부담감으로 하루하루를 소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한 자리를 내어 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는 내가 머무는 곳에서 나로 존재하여도 뭇사람에게 새로운 지평을 선사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되는 걸 나는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비록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보잘 것 없더라도 내가 나로 존재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내가 느끼는 나의 존재는 아주 미미하다.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들꽃처럼 나는 그저 흔하디 흔한 수많은 꽃 중의 하나일 뿐이다. 비록 보잘 것 없는 나이지만 지금의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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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얘기를 듣다 나의 모든 시간이 멈췄다. 아버지는 내가 만 원짜리에 손을 댈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벌이가 시원찮은 아버지는 몇만 원씩 사라지는 걸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아들을 다그치거나 혼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만두기를 기다렸다. 아들은 나쁜 행동을 멈추지 않았고,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 돈의 단위를 낮추는 거였다. 이렇게 된다면 아들을 나무라지 않아도 되고,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아버지라 할 수 없던 것들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해줄 수 있다고 여긴 것 같다. 그러다 아들이 멈추어준다면 다행이고 아니라 해도 본인의 방식으로 아들을 기다리려고 했을 것이다.

너무 먹먹하고 부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쥐여주는 한 움큼의 천 원짜리 지폐 뭉치를 받으면서 입술을 꼭 깨무는 것처럼 있는 힘껏 손을 움켜쥐었다. 서른이 훌쩍 넘어 있던 나는 가장 무섭고 올바른 훈육을 경험하게 되었다.

 

 

봉태규가 중1 때쯤 우연히 아버지의 양복 주머니 안에서 만 원짜리 다발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만 원, 그다음에는 이만 원... 자신이 아버지 돈에 손을 대는 걸 아버지가 모른다고 생각한 봉태규는 그이후에도 아버지 돈에 손을 댄다. 만원 짜리 돈 뭉치가 천 원 짜리로 바뀌자 그때부터 아버지 돈에 손대는 일을 그만 둔다. 사건은 그의 머릿 속에서 잊혀진다.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고 계셨고, 아들이 스스로 그만 둘 때까지 기다리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습이 먹먹해지는 장면이다.

만약 내 아이가 그렇게 했다면 나는 제대로 훈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을 확인하고 아이를 호되게 훈육했을 것이다. 그러나 봉태규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천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기다려 주는 것이 더 훌륭한 교육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 교육은 효과가 있었다. 봉태규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는 무능한 아버지였다. 그러나 아이가 스스로 옳은 일을 하도록 기다려줄 줄 아는 유능한 부모였다. 자녀를 제대로 훈육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모두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방식만이 제대로 된 교육일까?

 

 

 

 

 

나는 나와 같이 성장해온 친구들이, 함께 울고 웃으며 일하는 동료들이, 그리고 내 삶의 원동력인 가족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그들과 나눈 한 줌의 행복, 사랑, 희망이 다양한 형태로 내 안에서 뿌리내리고 있음을 안다. 각자의 온기를 유지하려면 서로가 필요하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고,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혼자서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의 크고 작은 시련을 나 혼자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내 곁에는 늘 누군가가 함께했다. 지금도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돌봄과 사랑을 받고 있다.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을 나눠주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대화만으로도 누군가를 격려하고 기운을 북돋워줄 수 있다. 조금만 더 마음을 넉넉하게 가진다면 가능한 일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고 툴툴대기 보다 나의 시간과 관심을 나누어 주고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 보려 한다. 보잘 것 없는 내가 누군가의 힘이 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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