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1
레온티예프는 자신의 진지한 주장을 "말이 민주당에 입당해 투표할 수 있었더라면 농장에서는 지금과 사뭇 다른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는 말로 재치 있게 드러냈다. 말은 자신들의 운명을 통제할 힘이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다르다. 나는 기술 결정론자가 아니라서, 미래는 틀림없이 이러이러하게 펼쳐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철학자 칼포퍼Karl Poper는 "미래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렸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의 필연성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말한 탓에, 운명이라는 철길이 이미 깔려 있고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서서히 움직일 뿐이라고 믿던 사람들의 적이 되었다. 나는 포퍼의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기술 현실론자이기도 한 나는 우리가 아직 기술을 능력껏 구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21세기에 우리는 오늘날보다 성능이 훨씬 뛰어난 시스템과 기계를 만들 것이다.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렇게 생겨난 신기술들이 언제까지나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업무들을 잇달아 차지할 것이다. 이 또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내가 보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벗어날 수 없는 미래의 모습을 받아들이면서도, 우리가 모두 함께 번영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p17
여기에서 중요한 대목이 있다. 노동 시간 감소가 대부분 기술 진보, 그리고 기술 진보에 따른 생산성 향상과 관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독일은 유럽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나라이자, 연평균 노동 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다. 그런데 그리스는 생산성이 가장 낮은 나라이자, 많은 사람의 생각과 달리 연평균 노동 시간이 가장 긴 나라다. 그림 1.4에서 보듯이, 이는 일반적인 흐름이다. 즉, 생산성이 높은 나라일수록 사람들이 더 적게 일한다. 케인스가 예상한 바와 달리 주당 15시간 근무는 아직 먼 이야기이지만, 꾸준한 기술 진보 덕분에 우리는 서서히 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p33
하지만 양쪽 모두 이 논쟁에서 고용되느냐 마느냐가 전부라는 듯이 일의 미래를 아주 좁게만 생각한다. 역사로 보건데, '일자리'만을 따지는 이런 사고방식은 전체 상화을 담아내지 못한다. 기술 변화는 일의 양뿐 아니라 일의 본질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얼마나 많은 보수를 주는가? 얼마나 안정되었는가? 하루 또는 주당 근무 시간은 얼마인가? 어떤 업무를 포한하는가? 아침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게 할 만한 활동을 하는 일인가, 아니면 이불 속으로 파고들게 할 만한 활동을 하는 일인가? 일자리에만 초점을 맞추면, 속담대로 나무를 보느라 숲을 보지 못할 위험은 그리 높지 않지만 숲에 갖가지 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놓칠 위험이 있다. -p34
언뜻 듣기만 해도, 이런 경제 성장이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같다. 경제가 성장하면, 그래서 사람들이 소비할 소득이 늘어나 더 부유해지면, 일거리를 얻을 기회도 늘어난다. 물론 어떤 업무는 자동화되어 기계의 몫이 될 것이다. 하지만 경제가 확장하면 상품과 서비스 수요도 함께 늘어나므로 그런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모든 업무의 수요도 같이 늘어나게 된다. 이런 업무들은 아직 자동화되지 않은 노동 활동을 포함하므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그런 업무에서 일거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p37
기술이 일에 미치는 영향이 서로 경쟁하는 이 두 힘, 인간을 대체하는 해로운 힘과 인간을 보완하는 유익한 힘의 상호작용에 달렸다는 생각은 새롭지 않다. 하지만 두 힘을 속속들이 명료하게 설명한 글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동화를 다룬 책, 논문, 보고서는 두 힘의 영향을 넌지시 말하지만 툭하면 용어를 마구잡이로 섞어 써서 헷갈리기 일쑤다. 이런 자료에 따르면, 기술은 인간을 쫗아내면서도 늘리고, 대체하면서도 강화하고, 가치를 깍아내리면서도 권한을 주고, 방해하면서도 유지하고, 파괴하면서도 창조한다. 우리가 마주한 난제는 컴퓨터와 경쟁하면서도 협력하고, 기계와 경주하면서도 함께 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계의 부상과 인간의 진전, 인간을 위협하는 로봇과 인간을 도와 협동하는 코봇, 기계의 인공지능과 인간의 증강 지능을 이야기한다. 이 자료들은 미래에는 인간이 쇠퇴하면서도 기계와 인간의 관련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다고, 그러므로 기술은 위협이자 기회이고, 경쟁자이자 동반자이고, 적이자 친구가 된다고 말한다. -p41
바실리 바실리예비치 레온티예프 (Wassily Leontief, 1905.8.5 ~ 1999.2.5)
독일에서 태어난 미국의 계량 경제학자로 하바드 대학교의 교수를 지냈다. 레온티예프 역설과 례온티예프의 법칙으로 유명하며, 미국의 경제를 수십 개의 경제 부문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있는 재의 상호 교류 관계를 일종의 경제표로 정리하였다.
칼 레이먼드 포퍼 (Sir Karl Raimund Popper, 1902.7.28 ~ 1994.9.17)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영국의 철학자로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었던 과학 철학자로 꼽히고 있으며, 과학 철학 뿐 아니라 사회 및 정치 철학 분야에서도 많은 저술을 남겼다. 고전적인 관찰-귀납이 고학 방법론을 거부하고, 과학자가 개별적으로 제시한 가설을 경험적인 증거가 결정적으로 반증하는 방법을 통해 과학이 발전함을 주장하였다.